이런저런 글을 쓰고 말을 하면서 잘난 척하지만-
사실 대부분은 즉석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백지 상태에서 갑자기 붓을 갈기는게 아닙니다.
평소에 먹을 갈아둬야 하죠.
반대로 평소에 먹만 간다고 해서 글이 나오는건 아닙니다.
붓을 들고 써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먹을 꽤나 마구마구 이것저것 가는 스타일입니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말을 하거나 글을 써서 정리를 해줘야하죠.
그런데 주로 몇분 한가해질 때 잠깐 스치는 생각도 많기 때문에-
오히려 정리한답시고 고민하면 기억이 안나곤 해요.
이런 이유로 계기라는게 중요하게 작용하게 됩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다가 특정 주제가 나오면-
그에 대한 견해를 말함과 동시에 생각이 정리되는겁니다.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최근에 네이버 카페에서 어떤 분과 가벼운 댓글 놀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발단은 제가 카페에 올린 시였습니다.
시는 제 블로그 노트 카테고리에 있는 "종이 비행기"입니다.
짧은 텍스트니까 링크없이 내용을 올립니다.
종이 비행기
가방 속 대충 뜯은 종이 한 장.
끄트머리에 적당히 적힌 몇 글자.
혀를 쏙 내밀고 조심스레 찢어 만든 직사각형.
길게 반으로 접었다 핀다.
가운데 선을 중심으로 앞쪽을 세모 뾰족하게 접는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나서.
기억이 안난다.
뒤로 돌려 접었던가, 네모 각지게 접었던가.
둥글게 말았던가, 원래 몰랐던가.
어릴 적 종이 쥐고 물 흐르듯 놀던 손이
십수년에 굳어 어리버리 망설이네.
생각없이 기억하던 것이 이젠 생각해도 기억 안나.
이리저리 접어보다 문득 손 끝에 맺히는 조각.
이내 자연스럽게 내 손바닥 위에는 종이 비행기.
하루를 버티게하는 5초의 동심이여라.
나는 이따금 이토록 행복한 사람.
아래는 댓글입니다.
상대분의 닉네임은 @@로 가립니다.
그 분의 댓글은 초록색입니다.
제 닉네임은 "초딩이니"입니다.
오타 수정, 다듬기 등 없이 그냥 복사 and 붙여넣기합니다.
──────
히~~~,,,
많이 접어 봤을텐데 모른다 함은...
결론적으로,
진실로 글을 쓰고져 하면서도,
시, 라는 형틀에 갖혀...
할 말 못한는 사람이거나, "시" 라는 형에 의하여, 글을 쓰는 사람이 지배 당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초딩이니님!!!...
글에,
나, 자신의 부표를...
나, 자신의 부표...
이해 하실까...
어렸을 때는 많이 접어봤죠
수업시간 기다리면서 그냥 접어보려고 했는데 10분 정도?
정말 생각이 안나더라구요.
종이를 이랬다저랬다 하다가 기억이 나서 접었습니다.
좋은 뜻으로 해주신 말씀인건 알겠습니다만
저를 거짓말쟁이 정도로 치부하시는 것같아서 상당히 기분이 나쁘네요.
저는 거짓말 안합니다.
특히나 시에 있어선 말입니다.
일례로 제가 고등학생 때 일입니다.
백일장에 나가게 되었는데 주제가 그 지역의 내천이었습니다.
대부분 학생들이 그 장소에서 시를 썼습니다만-
저는 주변 어른에게 물어 그 내천이 어디냐고 물어서 직접 가서 봤습니다.
꽤 오염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그 오염된 모습을 사람 사는 모습와 연결하여 시를 썼습니다.
거기에 분명 시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거짓 시인들은 오염된 내천도 아름다운양 말한다는 내용도 넣었죠.
결과는 당연 입상 못했습니다.
그런데 입상한 시의 내용을 봤더니 다 찬양 수준의 것이더군요.
뭐 여튼 말하고 싶은 것은 제 기분이 상당히 안좋다는 것입니다.
제 명예가 더럽혀진 기분입니다.
@@님의 충고하고자하는 마음은 알겠습니다만
작품에 있어 양심은 제게 있어 소중한 것이기에
조금 날카로운 이런 반응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시를 정확한 양심으로 쓴다는 것이 @@은 20~30년, 글을 쓰면서도 한 번도 실행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은,
지금 생각하면 너무 먼 길을 돈 것도 같습니다.
초딩이님!!!...
부디,,,
오해 없기를 바로오며,
오염된 천은 오염된 천이겠으나,
그 천의 아름다움은 우리의 기억 속에 있겠습니다.
더러운 것을 더러운 것으로 보고,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보는 것도, 결국은, 시인의 마음이겠으나,
잘 들여다 보면 거기에도 어떤 논리가 있습니다.
추리하여,
맑게 살려는 시인은, 더러운 시절을 살아 왔고,더럽게 살려는 시인은 맑게 살아 왔다는 아이러니가 있죠.
어쩌면,
시에는,
소설처럼 거짓도 필요합니다.
내 모습대로 거짓없는 진술이나 세상 읽기로 시를 쓴다, 할 때, 그 것으로 지식인의 모습은 다 한건가요?
시인도,
하나의 지식인이며, 사회 최고의, 애국자이며, 모범시민이며, 지도자란 것을 스스로 인식하지 않으면 않되겠죠.
제가 말하는 진실이라함은 보이는 것만 적는 설명문이 아니예요.
제가 비록 아직 어리지만 조금이나마 사물과 상황, 현상 등의 숨은 것을 볼 수 있어요.
제가 말한 거짓이란건 사람들을 현혹하고 속이는 거짓을 말합니다.
예컨데
종이접기 방법을 알면서 시를 쓰기 위해서 일부러 모른다고 말한다거나
오염된 강을 보고 깨끗하다고 말한다거나.
진실은 흔들리지 말아야지만, 가끔 흔들리는, 그렇기에 더욱 흔들리지 않도록 힘써야할
시에 있어 본 바탕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실의 다른 이름은 양심이겠죠.
자만으로 가득찬 사람일지라도 반성의 글을 쓸 수 있지요.
글이라고 했습니다. 시가 아니죠.
물론 글의 모습이 시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마음이 없으니 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론내어 말하자면, 시인이란 시를 쓰는 사람이라기보단
시에 마음을 담는 사람이라 할 수 있으며
저는 시에 마음을 담으려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시에 필요한 거짓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님의 의견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거짓이란 단어의 정의를 다시 하려함입니다.
거짓이 아니라 통찰이겠지요.
단순하게 봐선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옳지 않을까요?
@@님의 깊은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더하여 말하자면
'시인 = 지식인'이란 생각은 자칫 우월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시인에게 있어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이 없지는 않지요.
그렇기에 지식인이 시인이 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시인이 곧 지식이란 견해는 조금 위험하다고도 생각되네요.
적어도 위에서 내린 저의 시인의 정의로 보자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지요^^
──────
여기까지입니다.
사실 제가 시와 시인에 대해 저런 견해를 가지고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 댓글쓰기를 통해 평소의 생각이 정리된거죠.
솔직히 저 분의 댓글을 봤을 때 제가 좀 기분이 우울한 상태였어요.
그래서 평소같으면
"고마워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이러이러한거예요."라고 넘어갔을 지도 모를 내용에도
괜히 발끈한거죠.
저 분에게 조금 미안하네요.
동시에 제가 저런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주신 것에 고맙습니다.
방금 보니까 @@님이 또 다른 댓글을 올리셨더군요.
근데 뭐 더이상 끌고 싶은 생각이 없기에
그에 대한 답을 안했습니다.
당연 @@님이 이번에 올린 댓글도 여기에 안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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